2011년 10월 30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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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배부른 때가 위험하다
본문 : 신 6:10-18절
설교자 : 황상하 목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1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어떤 사업가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금덩어리 다섯 개가 있다. 내가 두 개를 가져왔다. 몇 개 남았냐? 세 개요. 내가 또 한 개를 뺏어왔다. 몇 개 남았냐? 두 개요. 그래, 이게 자본주의야. 내가 안 뺏어오면 다른 놈이 빼앗아 가는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먼저 가져가는 놈이 임자야. 사람들이 말로는 돈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건 없어.”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도가니’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입니다.
작가 공지영씨가 그 책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가진 자가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진 자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에게 가하는 폭력이 무차별적이고 잔인하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30:7-9절에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옛날에는 가난하여 도둑질 할 위험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가난하여 도둑질 할 위험보다 배불러서 도둑질 할 위험이 훨씬 더 높습니다. 가난한 자는 돈에 대한 위력을 사실 잘 모릅니다.
옛날에 어린아이들에게 ‘너 돈 있으면 뭐 할래?’라고 물으면 ‘사탕 사 먹을래요.’, ‘아이스크림 사 먹을래요.’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돈 생기면 무엇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를 사고 싶은 아이도 있겠고,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건 아이는 옛날 아이나 현대 아이나 그 욕구가 단순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의 욕구는 부자에 비해 매우 단순합니다.
양식 걱정 안 할 만큼만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난방비용 걱정 안 할 만큼만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집도 사고 싶고, 자동차도 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부자들은 돈을 더 갖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돈의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는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싶지만 부자는 돈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돈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돈을 더 가지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가난한 자의 돈이라도 빼앗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안 빼앗아 가면 어차피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먼저 빼앗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빼앗는다는 말은 좀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게 부자들의 마음이고 자본주의의 폐단입니다. 아합이 그랬고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실 부자들이 돈을 버는 것은 가난한자들을 상대로 버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경쟁을 하면 가난한 자는 거의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약점입니다. 자본주의의 이 약점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자들이 부자들입니다.
첫째, 재물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부자가 되는 방법은 성실하게 일해서 근검절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성실한 노력만 가지고 큰 부자가 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농경 사회에서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근검절약 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신속한 정보와 아이디어와 또 자본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셔서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본문 10-11절을 보십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땅을 갖게 된 것도, 집을 갖게 된 것도, 우물을 갖게 된 것도, 과수원을 갖게 된 것도, 심지어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들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땅이나 성읍이나 집이나 과수원이나 먹을 것을 풍족하게 갖게 된 것은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갖게 된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하고 피를 흘리고 싸워서 얻은 것이고, 땀을 흘리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피를 흘리며 전쟁을 하여 빼앗고, 땀을 흘리고 노력하여 얻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시려고 하시고, 이스라엘은 바로 그 점을 바로 배워서 알아야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얻은 것이 아니고 피 흘리는 전쟁과 땀 흘리는 성실한 노동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광야 40년은 그 점을 가르치시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만나를 먹었고, 사냥을 하지 않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매일 매일 내려주셨습니다. 40년간 그런 경험을 통해서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농사짓지 않고 먹던 만나가 그칩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길쌈을 해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 흘리는 전쟁과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서 얻게 될 모든 재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고 또한 강조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만나는 수고 하지 않아도 그냥 주셨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수고해야 주십니다. 그냥 주신 만나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수고하여 얻은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만나를 얻어먹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인정하고 믿었지만 농사짓고 목축하고 장사하여 얻은 소득은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신 8:17-18절에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지을 힘을 주셨고, 목축할 힘도 주셨고, 전쟁할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수고 하여 얻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누리는 혜택, 이 사회에서 누리는 혜택, 국가에서 누리는 혜택, 공부할 수 있는 머리, 노동할 수 있는 힘, 비즈니스 할 수 있는 지혜, 활동할 수 있는 건강 등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어떤 이익이나 소득을 얻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 점을 우리에게 강조하여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 점을 배우고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보다 좀 더 잘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살게 된 것이 자기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상 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얼마나 풍족한지 모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여러분의 집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집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옷장마다 옷들이 가득하고, 신발장에 신을 다 둘 수 없어서 이곳저곳에 신발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모든 것이 넘쳐나고 풍족합니다.
둘째, 배부른 때가 위험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도둑질을 해도 빵을 훔칩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죽이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습니다. 죄는 가난한 사람이 지은 죄나 부자가 지은 죄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지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고, 부자는 지은 죄로 인하여 더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어 위험한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세상에서 도와 줄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찾게 되고 부자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 해 준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필요를 못 느끼게 됩니다.
잠언 30:9절에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돈 많고 배부르고 건강한 사람이 기도할 가능성은 정말 희박합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고프고 몸이 병들면 기도하게 됩니다.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높고, 배고프면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부자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가난하고 병들게 되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게 되더라도 부자 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되기 위하여 일부러 가난하게 되고 몸을 병들게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고행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그렇게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기도하기를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사람이 나쁘지 않아도 부 자체가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 12:16-21절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의 경우, 부정축재를 했다거나 사기를 쳤다거나 도둑질을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지나치게 인색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한 재물입니다. 사람이 특별히 나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아도 부가 축적되면 위험합니다. 부자는 재물의 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재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빼앗길까 남을 의심하고, 재물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영혼까지 재물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배부를 때 조심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입니까?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것은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당신을 섬기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고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려면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물을 의지하여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전도요 선교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돈이 많으면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 가난하고 힘들 때 조심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하고 배부를 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배부른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도 배부른 것이 문제입니다. 배고프면 싸우지 않습니다. 싸움은 배부른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교회는 싸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돈 많은 교회는 안 싸우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싸우는 교회들의 공통된 특징은 돈이나 재물이 많은 것입니다.
재물이 많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입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려하신 일은 반드시 인간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공연히 염려하시거나 걱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 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누구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거나 하나님이 누구냐고 하는 것이 얼마큼 나쁠까요?
지난 주간에 뉴욕교협총회가 있었는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이 무례하여 자기 눈 아래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뉴욕교협총회는 안하무신(眼下無神), 그들 눈앞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회의를 진행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나 회원들 중 대다수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경찰관들이 회의장에 들어가 앉아 있고, 한 경찰이 앞에 나가 마이크를 들고 목사님들에게 교훈과 주의를 주었습니다. 임원들이 미리 경찰을 불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도덕과 윤리와 정의와 질서 같은 것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담대하게 부정을 저지릅니다. 그러고도 일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부하고 배불러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양심이 마비되어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뻔뻔하고 교만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입니다. 자기를 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시 하고 우상화 하는 사람은 반드시 권력과 명예와 재물을 탐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잊어버리게 되면 섬겨야 될 신이 많아집니다. 재물도 섬겨야 하고 명예도 섬겨야 하고 권력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14절에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을 따르고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배워갑니다. 자본주의도 배우고, 자유주의도 배우고, 실존주의도 배우고, 포스트모더니즘도 배우고, 온갖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를 배웁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릅니다. 세상이 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 합니다. 세상은 재물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를 탐하여 싸웁니다. 온갖 권모와 술수를 부립니다. 이런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투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16절을 보십시다.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교협이 모여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했습니다. 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고,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하나님을 모독 하는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한 사건을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옛날에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해코지 하고 도망가면서 ‘나 잡아 봐라!’라고 하면서 여자아이들을 약 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을 약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벌 한 번 내려 보시오, 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폭언 폭행 불의 불법 거짓말 사기 모함 모든 악행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배불러서 짓게 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저주와 멸망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복 받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1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명령과 증거와 규례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제반 명령과 규례. 법도를 가리키는 삼중 표현입니다. 조심하여 하나님을 잊지 않는 구체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악하고 나쁜 행동을 안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악하고 나쁜 행동을 안했다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왕상 11:33절에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솔로몬은 온갖 이방 신들을 다 들여와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둘로 쪼개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사람보기에는 정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는 것, 헌상하는 것, 기도드리는 것, 찬양 드리는 것, 구제하는 것,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직장생활, 비즈니스, 학교생활,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교우들과의 관계, 국민의 의무, 교인의 의무, 가족의 의무 등 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인 복은 이미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주시고, 성읍을 주시고, 온갖 가구와 생활 용품이 구비한 집을 주시고, 포도원을 주시고, 또 배불리 먹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인하여 배부르게 될 때가 위험한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조심하여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곳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여 지키면 복을 받고 아름다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먹을 것이 풍족할 때 조심하십시오. 입을 옷이 넉넉할 때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이곳 미국에 오게 하시고 영주권을 얻게 하시고 잡을 얻게 하시고 아내를 주시고 남편을 주시고 가족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짓지 아니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농사짓지 아니한 식물을 먹습니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옛날 종으로 살 때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해야 하듯이 우리들도 옛날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복 받는 삶이고 복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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